얼쑤! 우리소리도서관 ‘흥보가 완창’ 공연 관람기
흥보가 기가 맥혀 몽둥이를 피하랴고 올라갔다가 내려 갔다가 대문을 걸어놓니 날도 뛰도 못허고 그저 퍽퍽 맞는디 안으로 쫓겨 들어가며 “아이고 형수씨 사람 살려주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흥부전을 판소리로 들을 수 있었던 곳은 우리소리도서관 국악누리방이다. 우리소리도서관에서는 국악의 전승과 계승에 역량을 갖춘 연주자들이 다채로운 한국의 소리를 소개하는 시리즈 ‘한국의 소리’ 국악공연을 준비했다. 그 첫 번째 무대 ‘흥보가 완창’이 지난 11월 5일 열렸다.
‘흥보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하나로 ‘박타령’이라고도 불린다. 권선징악과 형제 간 우애를 담은 흥부전을 소리로 엮은 것으로 판소리 중 가장 오래된 소리다.
우리소리도서관에서 시리즈 국악공연 첫번째로 ‘판소리 흥보가 완창’이 진행됐다. ⓒ김수정
2시간 가까이 흥보가를 완창한 소리꾼 하미순은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제2호 흥보가 이수자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수자이기도 하다. 현재 진도군립민속예술단 수석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소리를 그만둘까 고민했었는데 무대에 오르니 더없이 설렌다며 공연 전 소감을 전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소리꾼의 하소연 같은 인사말은 우리 소리가 이 땅에 발붙일 곳이 많이 줄어든 것은 아닌가 싶어 안타까웠다.
소리꾼 하미순이 2시간 가까이 판소리 흥보가 완창을 했다. ⓒ김수정
그런 마음도 잠시, 시원하고 구수한 소리로 분위기를 압도했다. 흥부전은 아이들도 재미나게 읽는 전래동화이다. 흥보가 역시 익살스러운 장면이 많고 재담이 가득하다. 절로 ‘얼쑤’, ‘좋다’, ‘얼씨구’ 추임새를 넣게 된다. 고수의 북소리에 따라 고개도 끄덕여지고 어깨도 들썩거린다. 고수 공도순은 전국고수대회 대통령상을 받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고법 이수자다.
흥보가 놀보에게 쫓겨난 후 돈을 벌기 위해 매품을 팔아 연명하려 하지만 이 역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가로채기를 당하고 하는 수 없이 형님댁에 곡식을 얻으러 가지만 매질만 당하고 쫓겨난다.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처와 함께 슬퍼하는데 도승이 찾아와 집터를 잡아준다. 여기까지가 1부 순서였다.
소리꾼과 고수가 잠시 쉬는 동안 무대에서는 한국무용의 고운 선이 그려졌다. 중요무형문화재제27호 승무 이수자 김은숙 무용가의 산조춤 ‘청풍명월’이다.
잠깐의 휴식 후 2부에서는 흥보가 부러진 제비 다리를 고쳐주고 제비가 물고 온 박씨에서 난 박을 타서 부자가 되고 놀보가 제비를 후리어 나가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판소리 완창을 듣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모두가 아는 이야기에 재담이 가득해서 소리에 빠져 흥겹게 관람할 수 있었다.
산조춤 청풍명월이 흥보가 1, 2부 사이에 공연됐다. ⓒ김수정
흥보가 완창을 들을 수 있었던 ‘우리소리도서관’은 국악의 멋과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2017년 12월 국악로에 개관한 ‘국악특화도서관’이다. 국악로에는 조선성악연구회, 왕립음악기관의 후신인 이왕직아악부, 국립국악원, 국악예술학교 등 국악과 관련된 주요 기관 및 국악명인명창들의 자택과 전수소가 분포되어 있고, 관련 상업시설들이 국악인들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국악의 중심지다.
우리소리도서관은 창덕궁 앞 국악로 주변에 위치했다. ⓒ김수정
우리소리도서관에는 국립국악원, 국립무형유산원, 국악방송, 국악협회, 국악음반박물관 등 관련 기관에서 기증받은 자료와 전문가들의 자문을 통해 국악의 대중화를 위한 음원 감상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도서관인만큼 국악 관련 도서와 함께 일반도서를 열람할 수 있는 열람실도 있다.
우리소리도서관에서는 국악 관련 음원, 도서 등 다양한 자료를 만날 수 있다. ⓒ김수정
도서관을 차지하고 있는 내용물만이 아니라 공간의 분위기도 전통의 멋을 살렸다. 편안하게 도서를 읽거나 음반을 감상할 수 있는 한쪽 공간의 벽면은 창호지문으로 꾸며 아늑함이 느껴진다.
프로그램실과 야외공연장에서는 우리소리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과 공연이 진행된다. 이번에 새롭게 시작한 한국의 소리 시리즈를 비롯하여 여성국극강좌, 방학프로그램인 국악예술학교 등이 운영되고 있다. 11월 25일과 26일에는 신진국악인과 함께하는 국악콘서트 ‘신판놀희’가 무대에 오른다. 전석 무료이며 종루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신청할수 있다.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국악로에 위치한 국악특화 우리소리도서관에서 신진국안인들의 새로운 판, 새로운 놀이를 함께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우리소리도서관 안내
○ 위치 : 서울시 종로구 삼일대로 30길 47 4~5층
○ 운영시간 : 월~토요일 09:00~18:00 (일요일 휴관)
○ 관람신청 : 전석 무료, 선착순 온라인 접수(www.jfac.or.kr)
○ 문의 : 우리소리도서관 070-4550-5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