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아야 할 우리 역사…남산 ‘기억의 터’
4호선 명동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왼쪽에 남산으로 이어지는 길목이 있다. 오른쪽 담벼락에 노랑나비 떼에 둘러싸인 ‘기억의 터’라는 표시가 보인다. 격자무늬의 나무판 사이에 타일로 만든 작품이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또박또박 눌러쓴 글이 보인다.
“17세의 소녀가 67세의 노인이 되어 있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회한이 서려 있는 글을 읽으니 어느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국권을 빼앗긴 식민지 나라는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에 끌려간 어린 소녀들을 보호해 주지 못했다. 비단 어린 소녀들뿐만이 아니었다. 영문도 모른 채 징용이나 징병으로 끌려갔던 이름 없는 수많은 소년, 소녀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만큼 힘든 세월을 버텨온 분들이 있을까? ⓒ윤혜숙
남산 ‘기억의 터’로 올라가는 길은 오르막이다. 얼마나 걸어가야 ‘기억의 터’가 나오려나? 그런 생각이 들 때 담벼락에 ‘할머니가 살아온 세월보다 더 멀지 않은 길이예요’라는 문구가 보였다. 몇 걸음을 더 걸어가니 ‘할머니가 살아온 세월보다 더 힘들지 않은 오르막이에요’라는 문구도 나왔다. 그렇다. 지금 필자가 힘들다면서 올라가는 이 길조차 위안부 피해자로서 만신창이가 되어 귀환한 할머니가 평생 마음의 상처를 보듬고 지내 온 험난했던 삶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지금 생존해 계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숫자 ⓒ윤혜숙
도로 건너편 공사장 담장에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역사가 숫자로 짧게 기록되어 있다. 지금 생존해 계신 할머니는 19분이다. 지나간 역사를 증언해 주셨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한을 풀어드려야 할 텐데 일본 정부는 그들이 저지른 과거의 만행을 반성할 줄 모른다.
남산 ‘기억의 터’로 가는 길 바닥에 노랑나비가 이정표가 되고 있다 ⓒ윤혜숙
경사진 길을 따라 올라가니 길 바닥에 노랑나비가 이정표 역할을 해준다. 서울특별시 소방재난본부를 지나 왼쪽으로 꺾어지자마자 남산 ‘기억의 터’가 나온다. 여기가 ‘기억의 터’인 이유가 있다.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가 조성된 이곳은 이완용과 데라우치 통감이 한일강제병합조약을 체결한 통감관저가 있었다. 조선총독부가 세워지기 전 일제의 수탈이 자행되었던 곳이다.
1910년 8월 29일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던 경술국치가 시작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경술국치야말로 우리의 수치스러운 역사다. 그래서 통감관저 터 앞에 거꾸로 세운 동상이 과거의 역사를 고발하고 있다.
통감관저 터와 거꾸로 세운 동상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대지의 눈’, 왼쪽에 ‘세상의 배꼽’ 2개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대지의 눈’ 벽면에 새겨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글과 그림 ⓒ윤혜숙
‘대지의 눈’은 눈. 어둠과 밝음의 경계. 통로를 뜻한다. ‘대지의 눈’에는 통곡의 벽과 화해와 치유의 벽이 있다. 김순덕 할머니의 ‘끌려감’이라는 인상적인 그림을 배경으로 247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름과 그들의 증언이 기록되어 있다.
‘세상의 배꼽’ 가운데 배꼽을 연상하는 둥근 돌 ⓒ윤혜숙
‘세상의 배꼽’은 모성으로 세상을 보듬는다는 의미이다. 배꼽을 연상하는 둥근 돌에 윤석남 화가의 그림과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라는 문구를 한글,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새겼다.
다시 되돌아 서울특별시 소방재난본부를 지나서 남산 자락으로 올라갔다. 남산케이블카를 타는 곳까지 걸어오니 왼쪽에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올라가면 서울특별시청교육연구정보원(옛 조선신궁 터)이 있다.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커다란 나무 뒤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기림비가 세워져 있다.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증언했던 김학순 할머니(1924~1997)가 한국, 중국, 필리핀 세 소녀를 바라보는 모습을 실물 크기로 형상화했다. 남산 ‘기억의 터’에서 기림비까지 이어지는 ‘기억의 길’이다.
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하여 제정된 국가기념일이다. 2017년 12월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이전까지 민간에서 진행되어 왔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었다.
그렇다면 왜 8월 14일일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그 피해 사실을 증언한 날이다. 김학순 할머니는 1991년 8월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위안부 생존자 중 최초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다. 김 할머니의 증언 이후 전국의 생존자들이 잇따라 피해 사실을 알렸고, 이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인권 문제로서 국제사회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시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특별 해설 프로그램을 8월 14일부터 17일까지 진행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없어 매일 20명씩 사전 신청자를 대상으로 진행했다. ‘기억의 길’에 동행하지 못하는 온라인 참여자를 위해 안내 영상도 제작한다.(아래 홈페이지 내) ‘기림의 날 기념 공모사업’ 3개를 선정해서 연내 추진해서 피해자를 기억하고 기념할 예정이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라는 말처럼 외세의 침탈 앞에 나라를 지켜내지 못한 채 무너져내렸던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물론 위정자의 잘못이 컸다. 그런데 그 피해는 일제강점기 내내 국민이 감내해야만 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기억하면서 ‘기억의 터’와 기림비에 이르는 ‘기억의 길’을 조성한 이유다.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역사일망정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남산 ‘기억의 터’에서 기림비까지 이르는 ‘기억의 길’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 길이 어떤 길인지를 묻는 아이들에게 우리의 지난 역사를 알려주자. 지금 처한 상황이 아무리 힘들다고 한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삶에 비하랴!
■ 기억의 터
○ 위치 : 서울 중구 퇴계로26가길 6
○ 홈페이지 : http://peace-mem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