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운치에 반하고 가을 단풍에 또 반하고
곳곳에 완연한 가을이 한창이다. 갑갑한 코로나의 시절을 뒤로 하고 화려하게 물든 단풍으로 힐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가을 단풍으로 물든 풍경은 서울 도심에도 가득하다. 고고한 자태를 지닌 창경궁 주위도 그렇다. 궁 주위, 소복이 내려앉은 가을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창경궁은 종로구 와룡동에 위치한다. 지하철 4호선을 이용할 경우 혜화역 4번 출구에서 하차 후 도보로 갈 수 있다. 창경궁은 조선시대의 궁궐이다. 사적 제123호로 지정된 창경궁은 성종 14년(1483)에 세조비 정희왕후, 예종비 안순왕후, 덕종비 소혜왕후 세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옛 수강궁터에 창건했다.
창경궁에는 역사적 일화가 많이 깃들어 있다. 예를 들어 문정전은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고 서인으로 폐하라 명한 곳이며, 장희빈이 통명전 일대에 흉물을 묻어 인현왕후를 저주하다 사약을 받았다는 일화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창덕궁과 연결되어 동궐로 불리면서 실질적으로 하나의 궁궐 역할을 했다.
일제강점기에 창경궁은 다른 궁궐들보다 수난을 많이 당한 비운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제는 궁궐을 창경원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동물원, 식물원, 온갖 놀이시설들을 조성하기 위해 기존 건물들을 모두 파괴시키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1984년 궁궐 복원사업이 시작되고 1985년에 창경궁 중건 공사가 시작되어 1986년 준공되었으나 지금은 몇 안되는 건축물들만이 창경궁을 지키고 있다.
궁 안으로 들어서니 마주 보이는 명전문 인근은 보수공사로 진입이 불가했다. 창경궁 후원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단풍 사이로 보이는 관덕정이 한가로이 비쳤다. 창경궁 춘당지 동북쪽 야산 기슭에 있는 관덕정은 팔작지붕으로, 공혜왕후 한씨가 잠례를 거행하던 장소에 1642년에 취미정이란 이름으로 창건되었으나 1664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팔작지붕의 관덕정을 지나면 가을색이 더욱 짙어진다. ⓒ박은영
관덕정을 지나면서 단풍의 색은 더욱 짙어짐을 느낄 수 있다. 창경궁의 내전인 영춘헌과 서행각인 집복헌은 단아한 모습이다. 단풍나무와 어우러진 궁의 분위기가 더욱 운치 있었다. 창경궁 후원에 있는 연못 춘당지는 대표적인 단풍 명소다. 창덕궁을 둘러싼 언덕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냇물을 모아 만들어진 연못으로 조선시대 춘당대는 현재보다 지대가 높았고 선조 때 이곳에서 과거시험을 치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단아함이 돋보이는 창경궁의 내전 영춘헌과 집복헌 ⓒ박은영
춘당지는 창경궁 단풍의 명소로 알려진 것과 같이 그윽한 분위기였다.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풍경을 자아냈고, 색색으로 불든 단풍이 만들어 내는 장관이었다. 방문객의 인파가 몰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여기저시서 그 모습을 카메라에 남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단풍 명소 춘당지는 색색으로 물든 단풍이 장관이다. ⓒ박은영
춘당지 인근은 주변에 휴식할 수 있는 곳이 많아 넓은 궁궐을 산책하다 쉬어가기도 좋은 공간이다. 아울러, 춘당지는 1989년 창경궁에 기증받은 원앙 한 쌍이 이제 자리를 잡고 가족을 만든 장소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3만여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는 원앙을 춘당지에서 만날 수 있어 그 이후 창경궁의 춘당지는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주변에 휴식할 곳이 많아 산책을 하다 쉬어가기에 좋다. ⓒ박은영
조금 더 걸으면 1909년에 완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인 대온실을 볼 수 있다. 창덕궁에 거처하는 순종 황제를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일본인들이 창덕궁에 인접한 창경궁 내에 동물원과 함께 지었다. 일본인이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가 시공해 완성했으며 철골구조와 목조가 혼합된 구조체를 유리로 둘러싼 구조이다.
사실 창경궁의 단풍이 이리도 절경인 걸 처음 알았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가 이달 말부터 다음 달 초까지 서울 4대궁에 해당하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의 단풍이 절정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또한 궁능유적본부에 따르면 단풍은 이달 20일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창덕궁 후원과 창경궁 춘당지 주변, 덕수궁 대한문에서 중화문 간 관람로 등이 궁능유적본부가 추천한 대표적인 단풍 명소다.
멀리 가지말고 서울 4대 궁에서 가을 단풍을 즐겨보자. ⓒ박은영
언제 왔는지 모르게 스르르 사라질 가을이다. 가까운 궁을 찾아 운치 있는 궁의 가을 향연을 만끽해 보자. 단독 1,000원이면 된다. 힘겨웠던 2020년 한 해를 위로하듯 궁은 기꺼이 아름다운 가을을 내어줄 것이다.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