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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 이 기사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시행 전에 작성되었습니다.

2017년부터 4년째 진행 중인 ‘서울 미래유산 그랜드투어’가 7월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서울도시문화연구원이 주관하고 서울시가 지원하는 ‘서울 미래유산 그랜드투어’는 매년 3월에 시작되었으나,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지연되었다.

‘서울 미래유산’은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 중에서 미래 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모든 것을 말한다. 서울 시민들이 제안하고 참여해 지정된 미래유산은 현재 470여 개가 있다.

그동안 미래유산 투어에 대해 시민들의 관심이 뜨거웠는데, 다시금 코로나19 확진자들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어 직접 탐방하기보다는 온라인 탐방에 참여해보길 권한다. 유튜브 ‘어반티비’에서 미래유산으로 선정된 곳을 시청할 수 있다. 직접 투어를 가는 것처럼 자세한 해설을 들을 수 있어 우리 주변의 미래 유산과 역사적 사실에 대해 알 수 있다.

삼청동, 북촌 일대에 대해 권기봉 작가가 해설을 하고 있다
삼청동, 북촌 일대에 대해 권기봉 작가가 해설을 하고 있다. ⓒ최은영

지금까지 진행된 미래유산 투어는 지난 7월 만리동길을 시작으로 남산, 부암동, 잠실역 주변을 다녀왔고, 삼청동과 북촌 일대, 돈의문 일대 투어가 있었다. 이 중 우리에게 익숙한 삼청동과 북촌은 어떤 역사와 스토리가 있으며, 우리의 미래 세대에게 어떤 감성과 기억으로 전달될 수 있을지 소개해 보고자 한다.

삼청동과 북촌 일대에 관한 미래유산 투어는 정독도서관 – 삼청동 연막탄지주 – 한옥 밀집지역 – 헌법재판소 순으로 진행되었고, 해설은 권기봉 작가가 담당해 주었다.

친숙한 ‘정독도서관’ 속 근·현대사의 흔적들

시민들에 사랑받아 온 정독도서관
시민들에게 사랑받아 온 정독도서관 ⓒ최은영

시민들이 책도 읽고 공부도 했던 정독도서관은 도서관 건물 앞이 꽃과 나무 등으로 잘 가꾸어져 경관이 아름답다. 봄에는 벚나무가 멋지게 꽃을 피워 코로나 사태 전에는 북촌 일대의 관광객들도 많이 찾던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궁중의 화초를 키우던 장원서가 있었으며, 겸재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그리기 위해 인왕산을 바라봤던 자리가 정독도서관 정원이라고 한다. 근대 조선 개화파였던 김옥균, 서재필, 박제순의 집터이기도 하다. 1900년부터 1976년까지는 경기고등학교가 위치하던 자리였다.

정독 도서관 입구
정독 도서관 입구 ⓒ최은영

권기봉 작가는 정독도서관과 관련해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에 대해 말해주었다. 현관에 한자로 ‘正讀圖書館’(정독도서관)이라고 걸려 있는 글씨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이라고 한다. 놀랍게도 서울도시계획의 대전환과 관련 있는 흔적인데, 당시 시대상황인 남북 갈등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1968년은 남북 갈등이 최정점을 찍은 해로, 그 해 1월 21일 김신조 등 30여 명으로 구성된 북한 특수부대가 청와대 초입까지 잠입한다. 이틀 뒤엔 원산 앞바다에서 작전 중이던 미 해군 함정 푸에블로호와 북한군 간에 교전이 벌어지고, 그 해 말엔 울진과 삼척에 100명이 넘는 무장공비가 들어와 쑥대밭을 만든 사건이 발생한다. 남북 충돌이 전방뿐만 아니라 청와대 앞, 경북, 미군 등과도 벌어진 것이다.

결국 정부가 나서서 행여 있을지 모를 전쟁과 피난에 대비해 서울 인구의 상당수를 한강 이남으로 분산시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서울시가 나서 당시 최고의 명문고로 이름이 높았던 경기고 관계자들을 설득해 강남구 삼성동으로 이전하는 데 동의를 얻어 낸다. 이후 휘문고와 서울고를 비롯한 명문고들도 강남 일대로 많이 이전해 가게 된다. 당시 영동 지구라 불렸던 지금의 강남 개발의 서막이 올랐고, 그 뒤 벌어진 것은 누구나 아는 이른바 ‘말죽거리’ 신화가 생겨나게 된다.

곳곳에 휴식 공간이 있는 정독도서관
곳곳에 휴식 공간이 있는 정독도서관 ⓒ정독도서관

평소에 조용히 책 읽고 공부하고 휴식을 취하던 정독도서관에도 근·현대사의 여러 일들이 얽혀있고 그 흔적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생활에 친숙한 것들도 역사와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평범한 전봇대 No! 삼청동 연막탄 지주

서울미래유산에 등재된 연막탄지주
서울미래유산에 등재된 연막탄지주 ⓒ최은영

정독도서관에서 삼청로를 건너 팔판길을 지나다 보면 전봇대처럼 보이지만 전봇대는 아닌 구조물을 만나게 된다. 북촌과 청운동 등 청와대 주변 골목 사이에 있는 연막탄 지주들이다. 1968년 1.21 사태 이후 청와대 방호와 군사작전 수행 등을 목적으로 설치된 시설물들이라고 한다.

대통령 경호와 청와대 경비를 위해 낮에는 연막탄 발사대 지주로, 밤에는 조명탄 발사대 지주로 이용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총 68개의 연막탄 지주가 확인됐는데 그중 북촌 일대에 산재한 12개의 지주가 서울미래유산에 등재되었다.

남북 분단과 충돌의 흔적을 북촌 곳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평범하기 만한 전봇대가 군사적 시설물이라니 정말 놀라웠고, 우리 생활 곳곳에 분단의 흔적이 남아있어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다.

민족운동의 진앙지, 북촌 한옥 밀집 지역

전통의 멋스러움에 근대적 기능이 가미된 한옥
전통의 멋스러움에 근대적 기능이 가미된 한옥 ⓒ최은영

황현은 매천야록(1864~1887년 기록)에서 “서울의 대로인 종각 이북을 북촌이라고 부르며 노론이 살고 있고, 종각 남쪽을 남촌이라고 하는데 소론 이하 삼색(소론, 남인, 북인)이 섞여 살았다”고 기록했다. 황성신문 1900년 10월 9일자에는 “북촌 사람들의 말투는 매우 부드럽고 조심스러우며, 남촌 사람들의 말투는 빠르다”고 말씨에 따라 지역별 기질을 분석하는 기사를 실었다.

이렇게 서울은 신분과 지위, 직업에 따라 사는 곳이 달랐는데, 북촌은 주거지로서 최상의 입지적 조건 때문에 조선 중기까지 왕족과 벼슬아치들이 모여 사는 집단 거주지였다.

한말에는 교육과 의료의 중심지로 개화사상과 갑신정변의 발상지였으며, 이후 신분 상승을 위해 상경한 신흥 지방부호와 지주, 사회 지도층이 몰려들어 삼일운동을 비롯한 민족운동의 진앙지가 되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북촌의 한옥들
다닥다닥 붙어있는 북촌의 한옥들 ⓒ최은영

그런데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부터 1940년대에 인구가 서울로 집중되면서 주택난이 발생하였다. 세도가의 중대형 필지를 분할하여 집을 짓는 일이 늘어갔다. 북촌로에 있는 한옥들을 보면 집들이 다닥다닥 밀집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애초 대형 한옥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 북촌에 이렇게 작은 한옥들이 많아진 것은 정세권(1888~1965)이라는 부동산 개발업자 덕분이라고 한다. 그는 조선인들의 공간이었던 북촌에까지 일본인들의 주거지가 확장되는 것을 걱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거대 한옥 부지를 사들여 필지를 쪼갠 뒤 상대적으로 빈약한 조선인의 경제력으로도 살 수 있는 소형 한옥을 지어서 팔았던 것이다.

조용히 통행해 줄 것을 권장하고 있는 북촌의 한옥밀집지역
조용히 통행해 줄 것을 권장하고 있는 북촌의 한옥밀집지역 ⓒ최은영

그는 사업 수완도 좋았지만 물산장려운동에도 앞장서고 조선어학회에 건물을 지어 기부하는 등 민족정신을 지닌 인물이었다고 한다. 이때 한옥은 작아졌지만 오히려 전통의 멋스러움과 근대적인 재료와 기능이 결합된 새로운 양식을 탄생시켰다.

치열한 민주화 운동의 성과, 헌법재판소

대한민국의 헌법에 관한 분쟁을 담당하는 헌법재판소
대한민국의 헌법에 관한 분쟁을 담당하는 헌법재판소 ⓒ최은영

삼청동, 북촌 일대 미래유산 투어의 마지막 장소인 헌법재판소이다.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의 헌법에 관한 분쟁을 담당하는 헌법상 독립 기관이다.

현재의 헌법재판소 터는 조선 말기 좌의정을 지낸 박규수 선생의 저택이었고(1807~1876), 다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종합병원인 광혜원이 자리했다가(1885~1887), 그 후 경기여고(1910~1945), 창덕여고(1949~1989)가 있던 곳이다.

울타리 옆에는 윤보선 전 대통령의 집이 있다. 이 집은 널찍한 한옥으로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데, 이 집뿐 아니라 재동과 계동의 옛 한옥들은 많이 보존되어 있다. 뒤편으로 인왕산이 바라보이고, 걸어서 갈만한 거리에 인사동이 있으며, 창덕궁, 경복궁, 청와대 등과도 가깝다.

헌법 수호와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담당하고 있는 헌법재판소
헌법 수호와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담당하고 있는 헌법재판소 ⓒ최은영

헌법재판소는 1987년 제6공화국 때 개정된 헌법에 의해 1988년 출범하였다. 그 이전에는 탄핵재판소, 법원과 헌법위원회가 헌법재판소의 기능을 담당했다. 제2공화국 헌법에서 헌법재판소의 설치가 규정되었으나 5•16 군사 정변으로 실제로 구성하지 못하고 폐지되었다.

독립된 헌법재판소가 설치되지 못하고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은 남북 분단 상황에서의 독재와도 무관하지 않다. 남북 분단 상황에서는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힘이 쏠렸다. 이승만과 박정희 독재를 거쳐 전두환 정권에 이르기까지 독재 정권이 들어섰고 헌법 정신에 의한 통치보다는 힘에 의한 지배가 일어났다.

하지만 인권 신장과 개인의 자유 증진을 위한 민주화 운동은 멈추지 않고 계속 되었다. 피나는 민주화 운동의 결과, 결국 1987년 6·10 민주항쟁을 통해 이루어 낸 것이 지금의 헌법이다. 그 헌법을 토대로 법치주의를 실현해 나가며 입법·사법·행정의 삼권분립을 최종적으로 견제하고 심판하기 위한 기구로서 출범시킨 게 바로 헌법재판소이다.

헌법재판소 주변 거리
헌법재판소 주변 거리 ⓒ최은영

이렇게 삼청동과 북촌 일대는 우리에게 익숙한 장소지만,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고 어렵고 힘든 순간 함께 해서 서울과 우리들을 지켜온 곳들이다. ‘정독도서관과 연막탄 지주’는 분단과 전쟁의 갈등으로부터, ‘북촌 한옥 마을’은 일제 침략과 점령으로부터, ‘헌법재판소’는 독재와 인권 탄압으로부터 헌법 정신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과 함께 해왔다.

과거에도 함께 해 왔고 미래에도 함께 할 우리의 미래유산은 미래 세대에도 전달될 만한 가치가 있는 곳들이다. 그 가치는 아직도 형성 중에 있으므로, 앞으로 미래 세대에게 전달해 줄 좋은 가치를 어떻게 담을 것이지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미래 세대가 자랑스럽게 기억할 우리의 100년 후 보물이 될 미래 유산을 함께 잘 만들어 갔으면 한다.

■ 2020년도 서울 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시청
ㅇ 유튜브 : 어반티비
ㅇ 일시 : 2020. 7. 4. ~ 11. 14.
ㅇ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 : http://futureheritage.seoul.go.kr/
ㅇ 문의 : 서울도시문화연구원 www.suci.kr, 02-772-9069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신청은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web/program/list.do)를 통해 가능하나, 코로나19 감염증 확산 상황에 따라 답사 일정 및 시간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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