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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간 방치된 유진상가 지하 ‘홍제유연’으로 재탄생

서울시에 또 하나의 예술 공간이 탄생했다.

지난 1일, 서울시는 서대문구에 위치한 유진상가 지하에 홍제천이 흐르는 예술 공간 ‘홍제유연(弘濟流緣)’을 시민에게 처음 공개했다.

홍제유연은‘물과 사람의 인연(緣)이 흘러(流) 예술로 치유하고 화합한다’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유진상가 지하 250m 구간에 8개 작품들이 설치됐다. 50년간 버려졌던 공간을 시민의 예술놀이터로 승화시킨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2019년 ‘서울은 미술관’ 프로젝트로 선정된 유진상가 지하

홍제유연은 서울시 공공미술프로젝트 ‘서울은 미술관’의 일환이다. 서울은 미술관 프로젝트는 2016년부터 ‘서울의 도시 전체가 미술관이 된다’는 취지로 시작한 사업이다. 시민의 삶이 담긴 동네의 고유한 이야기를 찾고 예술과 함께 동네마다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 항상 시민과 함께 예술을 즐길 수 있게 만들어 가고자 하는 것이다.

예술 작품들로 재탄생한 유진상가 지하 공간. 작품명은

예술 작품들로 재탄생한 유진상가 지하 공간. 작품명은 ‘온기’ ⓒ김진흥

유진상가는 1970년 대전차 방호기지이자 최초 주상복합상가다. 올해 6.25전쟁 70주년을 맞이해 ‘화합과 이음’의 메시지를 담은 홍제유연과 남북대립 속 북한의 남침을 대비해 지은 유진상가의 역사성, 50년 만에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사업 취지와 잘 맞아 공공미술 프로젝트 공간으로 채택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해 월드컵경기장, 독산동남문시장 등 8개 장소들이 제안됐다. 그 중에서 유진상가가 지닌 사회, 역사적 맥락의 특수성이 매우 컸다.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결정됐다”라고 귀띔했다.

홍제유연 입구

홍제유연 입구 ⓒ김진흥

홍제유연은 새로운 형태의 공공미술을 선보이는 예술가들의 전시 무대다. 공간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빛, 소리, 색, 기술을 통해 다양한 시선에서 발견한 주제들로 장소의 의미를 이어간다. 건물을 받치는 100여 개 기둥 사이로 흐르는 물길 안에서 설치미술, 사운드 아트, 미디어 아트 등 8개의 작품들이 설치됐다.

‘홍제천은 어떤 곳인가’ 물음에 작품으로 답하다

작품들은 각각 홍제천과 유진상가라는 공간을 작가만의 독창성으로 재해석했다. 홍제유연 입구에 있는 ‘홍제 마니(摩尼)차’는 시민 1,000여 명의 메시지와 작품을 보고 있는 나와 공간을 비추는 거울로 이루어져 있다. 마니(摩尼)라는 뜻은 불행과 재난을 없애주고 물을 맑게 변하게 하는 보주(寶珠)를 뜻하는 말로 소원을 들어주는 구슬이다. 작품을 만든 팀코워크(Team Co-Work)는 “사람들의 메시지 속에서 삶의 행복을 교감하며 하루의 마음을 정리하는 정서적 안정을 경험할 것”이라고 전했다.

시민의 메시지들과 현재 나와 공간을 비추는 거울로 만든 ‘홍제 마니(摩尼)차’.

시민의 메시지들과 현재 나와 공간을 비추는 거울로 만든 ‘홍제 마니(摩尼)차’. ⓒ김진흥

현재 전시되고 있는 ‘홍제 마니(摩尼)차’는 사실 미완성 작품이다.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내 인생의 빛, 소중한 순간’에 대한 메시지를 오는 7월31일까지 한 달간 QR코드를 통해 추가로 받는다. 당신의 메시지가 홍제유연 작품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입구에서 점점 홍제유연 속으로 들어가면 홍제천 가운데 작품 하나가 눈에 띈다. 홍제천에서 사람중심의 정서회복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긴 작품 ‘온기’다. 따뜻한 빛이 홍제천을 감싸 안은 듯한 인상을 준다. 42개 기둥을 빛으로 연결해 빛이 물에도 비추면서 홍제천의 신비한 풍경을 연출하는 데 한 몫 한다. 과거 홍제천은 인기있는 빨래터로 주민들의 만남의 장소로 통했다. 그러한 사람들의 온기가 오늘날에도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작품이 탄생했다.

윤형민 작가의

윤형민 작가의 ‘SunMoonMoonSun’ ⓒ김진흥

한편, 홍제천에는 하나의 한자가 적혀 있다. 밝을 명(明). 이 한자는 뒤집힌 채로 설치돼 유진상가 지하를 비추었다. 그러자 졸졸 흐르는 홍제천에는 한자 원래대로 모양이 선명히 비추어졌다. ‘SunMoonMoonSun’ 작품을 만든 윤형민 작가는 인간 문화를 대표하는 글자인 한자와 물이 흐르는 소리 같은 자연 그대로의 소리가 결합된 개념에서 탄생됐다고 밝혔다. 자연과 인간의 얽혀 있는 관계 그리고 조화가 빛과 소리로 나타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마치 자연 속 홍제천과 인위적으로 지은 유진상가의 만남처럼.

국내 공공미술 최초 3D 홀로그램 작품

국내 공공미술 최초 3D 홀로그램 작품 ‘미장센_홍제연가’를 감상하는 시민 ⓒ김진흥

휴대폰 사진에 작품을 담으려는 시민

휴대폰 사진에 작품을 담으려는 시민 ⓒ김진흥

3D 홀로그램을 활용한 작품도 시민들의 눈을 사로 잡았다. 진기종 작가의 ‘미장센_홍제연가’ 는 공공미술 최초의 3D 홀로그램 작품이다. 중앙부에 설치된 길이 3.1m, 높이 1.6m의 스크린은 국내에서 설치된 야외 스크린들 중 가장 크다. 중앙부를 포함해 크기가 다른 9개의 스크린들이 연동되어 50년 만에 열린 홍제천 지하 수상 무대에 생겨나게 될 자연 모습을 예측했다. 3D 홀로그램 기술로 구현된 자연의 움직임들로 어두운 기둥 사이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순간을 보여주고 있다.

3D 홀로그램 작품에 대해 처음 봤다는 시민 김은숙 씨는 “신기해서 계속 보고 있었다. 다양한 모습들이 새로운 형태로 비춰지는 것 같아서 순간 여기가 우리 동네가 맞나 싶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인근 초등학생들이 그린

인근 초등학생들이 그린 ‘홍제유연 미래 생태계’ ⓒ김진흥

47개 빛들이 놓여 있는 팀코워크의

47개 빛들이 놓여 있는 팀코워크의 ‘숨길’ ⓒ김진흥

시민의 작품도 홍제유연에서 한 부분을 담당한다. ‘홍제유연 미래 생태계’는 유진상가 근처에 있는 인왕초등학교와 홍제초등학교 학생 20명이 그린 홍제유연의 미래상이다. 어두침침한 유진상가 지하에서 훗날에는 어떻게 바뀌어갈지에 대해 학생들이 홍제천 주변 생태를 살펴보고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홍제유연의 미래를 그렸다.

아이들의 그림을 바라본 한 홍제동 주민은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이 그리는 거라서 이 장소가 더 뜻 깊은 것 같다. 이 그림처럼 홍제천이 사람과 어우러지는 자연친화적인 공간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외에도 홍제천과 유진상가 주변이 지닌 수많은 이야기들을 빛의 이미지로 그려낸 ‘빛의 서사’, 47개의 동그란 빛이 홍제 유연을 비추어 몽환적인 산책로를 선보이는 ‘숨길’ 등 여러 작품들이 홍제유연을 빛내고 있다.

시민들의 쉼터 공간인 염상훈 작가의

시민들의 쉼터 공간인 염상훈 작가의 ‘두두룩터’ ⓒ김진흥

홍제유연 입구에는 새로운 시민 쉼터가 생겼다. 가운데 부분이 솟아오른다는 ‘두두룩하다’에서 따온 ‘두두룩터’는 기존 산책로와 홍제 유연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유진상가 지하와 바깥 세상을 이어주는 이음의 공간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늘이 있고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들이 있어 여러 시민들이 휴식처로 많이 이용할 전망이다.

홍제유연부터 산책로 미술관까지, 예술 여행 떠나는 홍제천

홍제천은 전부터 예술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는 서울시 하천으로 유명하다. 서울시 서대문구가 지난 2010년 홍제3교에서 사천교까지 홍제천을 따라 이어지는 약 3km 구간 내부순환도로 교각에 ‘홍제천 산책로 미술관’을 조성했다. 안산 인공폭포와 함께 홍제천의 매력들 중 하나다.  

홍제유연과 홍제천 산책로 미술관이 이어져 있다

홍제유연과 홍제천 산책로 미술관이 이어져 있다. ⓒ김진흥

산책로 옆 교각에 걸린 그림들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 진열돼 있다. 구스타브 카유보트와 에두아르 마네의 풍경화들부터 바로크, 신고전주의, 인상주의, 표현주의 등 미술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예술 작품들이 홍제천을 수놓는 중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홍제유연 개장은 시민에게 또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기존 홍제천 산책로 미술관에서 홍제유연까지 예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산책로가 더 확장되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고전 미술부터 현대 미술까지 시간 순으로 감상할 수 있어서 다른 하천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들이 가득하다.

홍제천에서 종종 산책을 한다는 이순주 씨는 “다른 데서는 볼 수 없지만 여기는 그림들과 함께 산책로가 잘 되어 있어서 좋다. 이제 유진상가 지하에도 새로운 공간이 생겼으니 볼거리가 더 풍성해져서 산책하기 좋을 것 같다”라며 즐거워했다.

홍제유연 개장으로 홍제천 길, 물빛로드와 함께 유진상가 지하 공간 트로이카가 결성됐다

홍제유연 개장으로 열린 홍제천 길, 물빛로드와 함께 유진상가 지하 공간 트로이카가 결성됐다. ⓒ김진흥

홍제천은 일반 하천을 뛰어넘어 하나의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되는 중이다. 지난 50년간 냄새나고 쓸모없는 공간으로 여겨진 유진상가 지하 공간이 예술가들과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미적 공간으로 조성된 모습은 서울시 공공미술 프로젝트 취지에 딱 어울린다.

이 곳은 어두운 장소 특성상 안전을 위해 운영시간을 따로 둔다. 홍제유연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개방하고, 커뮤니티 공간은 24시간 개방된다. 24시간 CCTV를 설치해 안전하게 산책하며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홍제유연의 현장 운영과 추가 전시 등 자세한 사항은 서대문구청(02-330-1114)에 문의하면 된다.

■ 서울시 공공미술프로젝트 ‘홍제유연’
○ 소개 : 빛 흐르는 예술길로 8개 작품 설치, 누구나 자유롭게 감상
○ 위치 :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48-84 유진상가 지하 250m
○ 교통 :
– 지하철 : 3호선 홍제역
– 버스정류장 : 유진상가, 유진상가 다리앞, 인왕시장 떡집 앞
○ 개방 : 매일 10:00 – 22:00
○ 문의 : 02-2133-2710(문화본부 디자인정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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