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연계 50억원 지원…현장의 목소리는?
서울시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불황을 겪고 있는 공연계를 위해 50억 원의 긴급자원을 투입했다. 실제 코로나19로 타격을 겪고 있는 공연계의 상황을 한 무대디자이너를 통해 들어보았다.
Q. 코로나19로 가장 힘든 점이 있다면요?
공연이라는 예술매체의 장점과 단점은 결국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작업이니까요. 그 과정에서 사람에게 때로는 상처받기도 하지만 위로 받는 것도 크거든요. 같이 부대끼면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작품 하나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소중한 거죠. 그런데 코로나19는 사람과 접촉하는 것을 완전히 차단시켜 버렸어요. 그 점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느껴요.
물론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대안이 나타나기는 했지만요. 가장 대표적인 게 화상회의인데, 저는 모니터로 만나는 것과 직접 대면하는 것 사이에 에너지 차이를 크게 느꼈어요. 직접 만나, 한 공간에서 이런 저런 아이디어들을 주고받으면 점차 서로의 에너지가 쌓인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그런데 각자 별개의 공간에서 비대면으로 만나게 되니까 그런 느낌들이 좀 덜 해요. 1991년생으로 컴퓨터 등 매체에 익숙한 세대인데도 모니터로 만나는 과정은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아직 언택트(Untact)라는 새로운 흐름은 저에게 낯설게 느껴져요. ‘공연계에는 적용이 안 됐으면 좋겠다’싶은 시대를 역행하는 마음도 조금 들고요.(웃음) 같이 만들어낸 작품을 함께 보고, 그 작품을 보러와준 관객을 만나고 하는 모든 과정은 결국 사람이 제일 핵심적인 대상인데, 그 대상과 거리를 두어야 하니까… 경제적인 부분도 그렇지만 심리적인 부분에서도 무거움을 느꼈어요. 온라인으로 공연을 상연하는 게 과연 관객에게 맞는 전달 방법일까 개인적인 궁금증도 생겼고요.
지난 11월, 코로나 사태 전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공연한 ‘까마귀의 눈’ ©김나희
Q. 코로나19로 많은 공연이 취소되고 있는데, 혹시 피해가 있었는지 또 다시 계획할 예정인지 궁금합니다.
3월로 예정된 공연이 있었어요. 도면도 일부 넘긴 상태였는데 사태가 워낙 심각해지다 보니 취소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죠. 5월 즈음 사태가 조금 잠잠해졌을 때 다시 계획한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문제는 시간이었어요. 갑자기 공연이 결정되는 탓에 시간이 모자랐고, 제작비도 충분하지 못해 추가 인력을 투입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죠. 제작사 입장에서도 코로나 사태로 어려운데 예산을 늘리는 데 위험부담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남아있던 창작진들이 잠도 못자고 인력과 시간을 투자해서 만들어냈죠. 거의 노동력 기부 수준으로 순수 인건비만 받고, 130~150만원 정도 손해 보고 일을 한 셈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라도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개인, 개인에게 와닿는 피해를 알기 위해서는 공연예술계 전반에 대한 통계를 먼저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예술경영지원센터 KOPIS 공연통계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KOPIS(공연예술 통합전산망)라는 사이트에서 발췌한 자료를 보면, 코로나19 사태가 급격화되기 시작한 3월 공연 개막편수가 급감했어요. 그 과정에서 저와 같은 피해를 본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추정돼요. 주변만 돌아보더라도 갑자기 공연이 취소된 바람에, 백수가 되었다는 친구들의 연락을 3~4월에 계속해서 받았으니까요. 4, 5월은 어느정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2019년도 동기간에 비하면 반으로 줄어든 수치로 그다지 좋은 상황은 아니에요.
공연 하나의 막을 올리려면 정말 많은 인력이 투입돼요. 무대 뒤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제작비와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공연마다 최소 1명의 크루만 일을 한다고 쳐도 3월을 기준으로 했을 때 최소 수백명은 일자리를 잃어버린 셈이에요. 지금은 온라인으로 상연을 한다고 하지만, 실제 현장에 있어야 하는 그 친구들은 아직까지도 일자리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Q. 정부가 예술가들에게 어떤 부분을 지원해주면 좋을까요?
현재 정부에서는 개인적 피해에 대한 경제적인 측면은 많이 지원해주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정부지원금의 종류가 워낙 많으니, 그 부분은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다만 지원금이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를 느껴요. 예술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프리랜서가 많은 편인데, 프리랜서 지원금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친구들도 다수 있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서울시 거주자만 지원해준다고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아니더라고요. 결국 기간이 지나서 신청하지 못했죠.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예술인패스에 등록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문자 하나만 보내줬어도 다들 신청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좀 남아요.
3월 취소했던 공연이 5월 재개됐다. 사진은 리허설 현장 ©김나희
경제적인 측면 말고도 창작활동 중단에 대한 공허함이 있을 것 같아요. 목표를 향해서 막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부 휘발돼 버린 거죠. 개인작업이 아닌 공동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불안함이 더 크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심리적인 문제들은 결국 정신적인 문제로 연결되는데 온라인으로라도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창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보통은 일 끝나고 회식자리를 가지면서 푸는 편인데, 코로나로 그것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가능하다면 공연 전체 프로덕션에 대한 지원도 확대 됐으면 좋겠어요. 정부 지원금은 개개인에 대한 지원은 해주고 있지만 하나의 공연 팀에 대한 지원은 조금 부족한 느낌이랄까… 생존이 걸린 문제이니 이해는 하지만 작업들이 이렇게까지 멈출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급작스러웠으니까요. 어쨌든 공연이 재개되기 위해서는 서로 거리를 가지는 기간에도 거리는 유지하되, 창작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절단되면 안 된다는 생각인데, 당장 서로의 생계를 이어가기 힘드니까 방어 할 새도 없이 정말 완벽하게 창작의 끈 또한 뚝 끊겨버렸어요. 이건 앞으로 공연계와 사회와 같이 조율해 나가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Q. 사람들이 공연장을 찾게 하려면 개인과 사회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코로나 사태에 “공연장에 와주세요” 하는 것은 조금 이기적인 것 같고 강요할 수도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대형 극장들에서는 관객과 관객 사이 한 좌석을 비우고 지그재그로 배치해 관객을 만나고 있지만, 역시 이 문제는 첫 번째 문답과 맞닿는 부분이 있죠.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만 하는 예술이라는 생각이 강하니까요. 다만 아쉬운 것은 영화관의 경우에는 공연만큼 취소 사례가 많지 않다는 것이에요. 사태가 조금 진정 된 이후에 영화관은 종종 방문하셨을 거에요.
제가 2017년에 영국을 여행한 적이 있어요. 뉴욕 브로드웨이와 같은 런던 웨스트앤드라는 곳에서 그 당시에 ‘매장된 아이’라는 공연이 진행 중이었어요. 학부생 때 매우 무겁게 읽었던 희곡이라서 ‘왜 저 작품을 공연하지, 너무 무겁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예매했어요. 그런데 저도 모르게 TV쇼를 보듯이 편하게 공연에 몰입하며 봤어요. 극장에 착석하기 전에 바(bar)가 있어서 주류를 판매하고, 인터미션이 있는 공연에서는 아이스크림을 팔기도 하고요. 공연을 보면서도 다들 맥주를 한 잔 걸치며 배우의 대사에 공감하고, 작품이 주는 분위기에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마치 그 날의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뮤지컬을 보러가도 오페라 보는 듯한 느낌을 종종 받았었는데, 그야말로 문화충격이었던 거죠. 무거운 작품을 이렇게 위트 있게 풀 수도 있구나 싶었고요.
우리 모두 비평가가 될 필요는 없어요. 생각하시는 것만큼 격식을 많이 차릴 필요도 없고요. 영상으로 만나던, 공연장에서 만나던 공연이라는 예술이 대중에게 조금 더 가볍게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공연장을 영화관 가듯이 조금 더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됐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에요. 앞서 언급했듯이 공연장마다 온라인 상영을 하는 작품들이 많이 있어요. 유튜브로 중계해주는 공연들도 있으니까 맛보기로 ‘이런 공연들도 있구나’ 둘러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거예요. 현재의 플랫폼을 적극 활용해 보시고, 다시 공연장의 문이 열릴 때에는 모두 리프레쉬 된 새로운 마음으로 만나게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6월 8일 한남동 소재 블루스퀘어에서 진행된 렌트 쇼케이스 현장, 좌석을 한 자리씩 비워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김나희
위와 같이 현장에서 직접 일하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실제 공연계의 안타까움과 관객과의 소통 부재로 인한 우울감이 크다고 느껴졌다. 인터뷰를 마치며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힘을 내고 있는 모습을 함께 응원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