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폼페이’ 종로로 떠나는 역사 산책
지금은 거대한 빌딩 숲이 되어 버린 종로는 조선시대?한양의 상징 거리였다.?한양의 행정구역에서 가장 번화했던?문화와 역사의 현장이다. 특히 종로의 역 중에 종각역 주변은 우리 역사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종각역 주변만 돌아봐도 수십, 수백 년 전?조상의 숨결이 느껴져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종각역 주변에서 가장 먼저 들려야 할 곳은 3-1번 출구로 나가 센트로폴리스 빌딩 지하에 있는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2015년 공평동 도시환경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조선시대 한양에서 근대 경성에 이르는 서울의 골목길과 건물터가 발굴되었고?도시유적과 기억을 원래 위치에 전면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도시유적의 역사성, 사실성, 장소성을 보존해?옛 서울의 변화과정을 한눈에?찾아볼 수 있는 명소가 되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문의 02-724-0135, 운영시간 매일 09:00~18:00, 입장마감 17:30, 월요일 휴무, 1월 1일 휴관, 관람료 무료
공평도시유적전시관?ⓒ최병용
공평도시유적전시관 내 옛 집터?ⓒ최병용
‘종각역’ 하면 재야의 종소리가 울리는?보신각을 빼 놓을 수 없다. 보신각에 있던 옛 종은 세조 14년인 1468년에 만들어져 517년을 울리며 역사의 현장의 지켰다. 하지만 수명을 다해 국립중앙박물관에 영구보존하고 온국민의 성금을 모아 1985년 광복 40돌에 맞춰 새 종이 보신각을 지키게 되었다. 보신각은 본래 도성의 문을 열고 닫는 시간과 비상시에 종을 쳐서 알렸던 터다.
보신각 바로 앞에는 1919년 3.1독립만세 시위의 중심지로 4.23 국민대회를 개최하고 한성정부를 선포한 기념비와 척화비가 있던 기념비 표지석이 있다.
3.1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된 터 기념석(좌)와 흥선대원군이 세운 척화비 터?기념석(우)?ⓒ최병용
5번 출구로?나가면 동학농민군을 이끌었던 녹두장군 전봉준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1894년 동학농민군은 부패한 벼슬아치를 몰아내고 폐정을 바로 잡기 위해 전봉준 장군을 필두로 봉기했다. 전봉준은 공주 우금치에서 진압군 주력인 일본군에 패해 전옥서터에 갇혀 있다 교수형으로 사라졌다. 순국 123년을 기념하여 2018년 종로 네거리 전옥서 터 근처에 동상을 세웠다.
전봉준 동상 바로 앞에는 전봉준을 비롯한 천주교 신자들이 형조로 이송되어 심문을 받고, 형이 집행되기 전까지 수감되던 전옥서 터 표지석과 1898년 남궁억 등이 창간한 황성신문 터 표지석이 있다. 황성신문은 국한문 혼용의 애국계몽 일간지로서 국권을 수호하고 국민을 계몽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장지연이 ‘시일야방성대곡’이란 통분 논설을 게재 후 정간 당했다.
1번 출구 앞은?조선시대 의금부가 자리잡고 있던?곳으로 의금부 터 표지판이?서 있다. 의금부는 조선시대 왕명을 받들어 죄인을 추국하던 관청으로 금부, 금오, 왕부라 불리기도 했다. 신해박해 때 이승훈 베드로 신부, 신유박해 때 권철신 암브로시오 신부, 병인박해 때 베르뇌(장)시메온 주교 등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서 문초와 고문을 견디며 마지막까지 신앙을 지켰던 장소이다. 또한 이곳은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할 때 출발했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1번 출구에서 10m 떨어진?그랑서울 1층에는 빌딩을 짓는 과정에서 발굴된 조선시대 청진지구 시가지 유적을?그대로 복원해 놓은?도시문화복원소가 자리 잡고 있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제방기포의 풍경과 조선시대 청진지구 모습, 조선시대 총통이 다량으로 발굴된 곳이 보존되어 있다.
도시문화복원소?ⓒ최병용
1번 출구에서 광화문쪽으로 20m 정도 가면 조선시대 청진8지구 우물을 재현한 곳이 있다. 청진8지구 우물은 특히 축조방식과 재료가 우수하고, 우물주변에 박석을 깔아 접근성을 높이고 배수가 잘되게 하였다. 도성민들이 식수로 사용할 수 있도록 피맛길에 위치한 우물이다.?조금 더 가면 Y.M.C.A. 앞에 3.1독립운동 기념터 표지석도 볼 수 있다.
1번 출구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면 시간의 주춧돌을 만날 수 있다. 장초석은 건물의 기초가 되는 주춧돌로 건물 아래 부분이 썩는 것을 막는 동시에 마루를 높여 건물 외관에 품위를 높이는 역할을 했다. 시전행랑의 주춧돌이었던 장초석을 이전해 전시했다.
건물의 기초가 되었던 주춧돌인 장초석을 전시한 모습?ⓒ최병용
종로는 한양 도성 때부터?지금까지 끊임없이 발전해 왔던 곳이다. 조선시대 상업의 중심지였던 종로는 서울 600년의 모습을?지하 4~6m 깊이에 층별로 켜켜이 쌓은 채 보존되어 있는 ‘조선의 폼페이’ 같은 곳이다. 우리가 발 디디며 늘 걷는 종로는 지난?6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사라져간 선조들의?숨결을 느끼며 생각할 수 있는?소중한 장소다. 종로를 지나고 종각역을 지날 때면 한번쯤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고 가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