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마터 2-10] 82화 : 조선이 이긴 건 아니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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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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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에서도 일반대중들이 해방의 의미를 확실히 알게 된 것은 히로히토의 방송이 나온 이튿날인 8월 16일이 되어서였다. 또한 9월 9일에 총독부의 일장기가 내려오고 성조기가 올라가는 국기교체식이 있었지만 지방에서는 10월 중순까지도 일장기가 여전히 계양되어 있었다. 미점령군사령관 존 하지는 9월 14일 총독을 비롯한 조선총독부 관리들을 사법처리하지 않고 해임했고, 남조선 각 지방의 일제 관리들을 10월 17일에 해임했다. 미점령군에게 식민통치권을 넘겨준 조선 총독과 휘하 관리들은 미군측이 친절하게 마련해준 군용기를 타고 9월 19일 일본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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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당일 저녁에 영등포 시장 로타리 건너편 한길 가에 있던 제재소에서 조영춘과 박선옥을 비롯한 남녀 노동자들 이십여 명이 모였다. 그들은 서로가 아는 대로 공장내 사정과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건국준비위원회와 보안대를 조직할 것에 대한 의논을 했다. 일주일이 못 가서 건준 경성 영등포 지부가 결성 되었고 인천 수원 등지의 경기도까지 거의 동시에 조직이 되었다. 이는 일제 때부터 전국적인 연계를 갖고 진행 되었던 노동 농민 운동의 조직적 뿌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어쨌든 일제의 종전선언 이후 겨우 삼 주 만에 건준은 전국에 백 사십여 곳의 지부를 설립하고 그 산하에 보안대 즉 청년 치안대를 갖추게 되었다. 이를 토대로 하여 조선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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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철은 히카리 특급열차의 기관수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대륙으로 갈 수 없게 되었다. 대부분의 공장 기업들은 생산활동을 멈추고 있었으며 노동자들은 자치위를 결성하여 일본인들로부터 관리를 넘겨받았다. 총독부 관리들이나 경찰 조직 외에 일본 민간인들은 전국적으로 서둘러 조선을 빠져 나가려고 하여 조선인 노동자 자치위에 인수인계서를 써주고 시설물을 넘겨주는 공장 기업소도 많았다. 그해 8월의 어느 날 이일철은 아우의 일로 두 차례나 예전 경성 콤 그룹의 일원이었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조영춘이 박선옥과 함께 그를 찾아왔다. 조영춘은 자기들이 영등포 일대에 건준 보안대를 조직했고 그들 대부분이 노동자들이라고 말했으며 감옥에서 죽어간 이이철의 벗들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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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달영이를 잡아야 합니다. 그놈은 뼛속까지 왜놈인 야마시타입니다. 우리 조선 사람들의 등골을 빨아 경부보까지 올라간 놈이지요. 이철 동무의 원수를 갚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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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모랫말에 사는 건 당신들도 알고 있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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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철의 질문에 박선옥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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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경찰서를 접수하고 있어요. 일본 경찰은 물론이고 조선인 보조와 순사들은 모두 도망갔어요. 최달영의 집에 갔더니 처자식들도 보이지 않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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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는 우리가 어서 독립 정부를 세우는 게 급선무입니다. 그러면 우리 정부가 친일분자들을 단죄하게 될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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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최달영의 소식은 시월 중순까지 완전히 끊겨 있었다. 8월 말에 인천의 김근식이 일철을 찾아왔다. 역시 박선옥이 그를 데리고 샛말 집에 왔던 것이다. 그는 사 년여의 옥살이를 하고 해방 덕분에 가까스로 생환할 수가 있었다. 김근식은 이철의 형 일철이 아우보다 온건하기는 하지만 혁명가 지원자인 모쁘르보다는 더 실천적인 활동가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김은 경인 지구의 당 재건 책임자로서 이일철을 주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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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찾아온 것은 다름 아니라 철도 노동자는 산별노조 중에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놀아야할 조직이기 때문에 의논드리러 왔습니다. 지금 기관수로서 기관차를 운전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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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 운전부에 배치 받아 기관수 일을 시작할 때에 조선인 기관수는 백 명 중에 이십 명 꼴이었지요. 전쟁 나고 막바지에는 조선인 철도원이 육십 프로 정도까지 늘어났습니다. 기관수도 절반쯤은 조선인 기관사로 채우고 있었습니다. 현재는 일본인 기관수와 역원들이 일손을 놓아버려서 많은 노선이 쉬고 있습니다. 경부선과 호남선 경의선 경원선의 근간 노선만이 운행되고 많은 지선들은 며칠에 한번 꼴로 간신히 운행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저는 경의선과 안동 신경 선을 교대로 맡았지만 대륙은 막혀 버렸고, 북선지방도 저의 주소지가 서울이어서 개성까지가 제 담당 구역입니다. 이북은 소련군 관할 구역이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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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이 조심스럽게 제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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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수나 선로원이나 역을 관리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수뇌부 노릇을 할 수 있는 조직 활동가가 더 중요하겠지요. 용산철도국의 노조에 참여하셔서 이끌어 주셨으면 합니다. 아니면 이곳 영등포 철도공작창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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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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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철도국의 간부들은 대부분이 일본인들이었고 그들은 절대로 중요 관리직을 조선 사람들에게 맡기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기관수는 특별히 국외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물론 대우는 좋았지만 기술자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용산에 노조를 조직한다면 노련한 당 활동가가 직접 들어가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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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이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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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이일철 형은 노련한 활동가가 될 수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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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차라리 이곳 영공에 들어가 일했으면 합니다. 제가 태어나 자란 곳이고 무엇보다 부친이 평생을 보낸 직장입니다. 영등포에 사는 이는 누구든 제가 거의 알만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여기서 노조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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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제가 이형에게 부탁하려던 일입니다. 영등포 철도 공작창의 노조를 이끌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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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금이는 남편이 해방 되고 나서 급속하게 변해가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온건하고 단정한 모습은 변하지 않았으나 적에 대한 증오와 결의는 단호했던 것이며, 집안일에서 차츰 멀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는 아마도 이철의 죽음이 가슴의 못으로 깊이 박혀 있었던 듯했다. 술이 취해 돌아온 어느 날 일철은 아내 신금이에게 털어 놓기도 했다. 자기는 충실한 일제의 신민으로 살아가며 그들의 손발이 되어 철도 직무를 수행했고, 아우의 항일 활동을 소극적으로 돕는 시늉이나 하면서 스스로를 달랬다고 자책하였다. 이제 해방된 나라에서 이전처럼 살지는 않겠다고 그는 작심한 것 같았다. 아우 이철이가 꿈꾸던 세상을 이루는 쪽의 편이 되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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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8월 16일 당재건파의 일꾼들은 ‘조선 근로대중의 위대한 지도자 박헌영 선생은 어서 나와 우리를 지도해 달라!’ 는 벽보를 서울 곳곳마다 붙였다. 광주에서 분뇨 청소원, 벽돌공장 공원, 날품팔이 김성삼으로 은거해 있던 박헌영은 8월 19일에 광주를 떠나 상경했다. 그는 즉시 조직원들의 건준 참여와 보안대의 핵심에 들어갈 것을 지시했고 인민공화국을 선포했다가 미 점령 당국의 군정 선포로 9월 11일에 조선공산당 재건준비위원회를 발표하고 인민위원회 중심으로 전국 조직을 하게 된다. 그들은 국내에서 마지막까지 현장에서 싸워 왔던 노동자 농민 대중을 조직의 기본 토대로 출발하고자 하였다.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준비위는 1945년 9월 26일에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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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철은 용산 철도국 중앙사무국에서 발령을 받아 영등포 철도공작창의 기관차 화차부의 기사로 취업했다. 조선인만 남은 공작창의 노동자 기술자 중간 간부들 대부분이 수십 년간 일해 온 그의 부친 이백만을 알고 있었으며 그의 아우 이이철과 그의 항일투쟁도 옥사한 사실도 다들 잘 알고 있었다. 전국적으로 급속히 이루어진 노동조합은 금속 철도 출판 노조 등이 가장 단결된 조직으로 전국 산별노조의 전위가 되었다. 이일철은 영등포 철도공작창의 노조지부장으로 당선되었다. 조선 대륙간 특급열차의 조선인 기관수로서 그만한 경력을 가진 철도국원이 드물었기 때문에 그는 대번에 노조원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전평 준비위의 영등포 준비위원장이 되었다. 구름이 낮게 깔리고 잔뜩 흐려 우울한 회색빛 하늘이 남산 위에 드리워진 11월 5일과 6일 이틀 동안 중앙극장에서 16개 산별노조의 이십여 만 명 조합원을 대표하여 전평이 결성 되었다. 대회에서는 긴급제의에 따라 조선 노동계급의 수령이요 애국자인 박헌영 동무에게 감사 메시지, 연합국 노동자들에게 감사 메시지, 교란자 이영 일파 박멸 결의, 박헌영 동무의 노선절재지지 등 4대 결의를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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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앞서 야마시타 최달영은 이른바 일본 천황의 방송이 나온 그날 저녁에 귀가하자마자 아내에게 독촉하여 친정인 안양으로 가서 당분간 지내도록 해놓고는 자신도 간단한 짐을 꾸려 집을 나섰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일본인 상관이나 동료에게 기댈 곳이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영등포 역전 본정통 일본인 거리로 가서 마쓰다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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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야마시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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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자네 어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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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댁의 근처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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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다는 평소와 다른 말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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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왜 집으로 오지 않는 거요? 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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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몇 번 들렀던 마쓰다의 집 현관으로 찾아가 문을 두드리자 하오리 차림의 그가 반기면서 문을 열어 주었다. 응접실에 가서 마주 앉으니 마쓰다 부장의 아내가 쟁반에 맥주 두병과 잔을 받쳐 들고 그들의 앞에 놓아 주었다. 마쓰다가 맥주병 뚜껑을 따고 그의 잔에 찰찰 넘치게 따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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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프 물에 담가두기는 했지만 별로 차겁지는 않네. 요즘엔 얼음이든 뭐든 물자가 귀해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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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시타 최달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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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덴노 폐하의 옥음은 무슨 의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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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의미? 말씀 그대로 일본이 연합국의 결정을 받아들여 종전하겠다는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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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일본사람은 누구나 귀국하게 되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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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이지. 이 사람아 이제 자네가 남아서 조선의 경찰을 발전시켜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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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달영은 다시 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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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조선이 독립 국가가 되면 저 같은 사람은 처벌을 받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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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마쓰다는 낮게 웃음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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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걸세.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이 이긴 건 아니잖나. 이제 미군이 들어오면 우리의 치안 행정 체계를 고스란히 받아들일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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